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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도전과 성장 스토리

도전과 성장 스토리

DATA로 세상을 바꾸는 KISTI

PART 1. 기관 변천 및 발전

03
무한경쟁시대
산업기술 경쟁력 강화에
나서다

산업연구원 부설 기관에서 산업기술정보원으로 독립

산업연구원 부설
산업기술정보센터 개소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기점으로 국내 정치·사회에 찾아온 급격한 변화는 KIET의 운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른바 6·29선언 이후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서 그해 9월 22일 정부출연 연구기관 최초로 KIET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태동하던 무렵인 1987년 7월, KIET는 연구원 부설 산업기술정보센터를 설립하기로 하면서 기관 운영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국가 기술정보 유통의 중요성이 부각함에 따라 상공부와 과기처 장관의 공동발의와 산업정책심의회의 의결을 거쳐 ‘산업기술정보 유통체제 개선방안’이 확정되었다. 당시 개선방안의 핵심은 산업기술과 관련된 국내외 모든 정보를 민간기업이 쉽게 이용하도록 산업기술정보센터를 신설하고, 정보 유통량을 확대하며 취급 정보의 질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KIET는 1987년 11월 27일 전국에 산재한 산업기술 정보의 공동활용과 범국가적인 정보유통체계 확립을 위해 총 34개 관련기관이 참여하는 산업기술정보 유통촉진협의회를 결성했다. 이어 각 기관들이 독자적으로 수집·생산해온 정보자료를 KIET로 일원화하고 정보의 중개와 알선을 담당함으로써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산업·기술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1988년 5월 20일에는 기존 기술정보조사부를 확대 개편하여 (부설)산업기술정보센터를 개소하고 이듬해 1월 인사 및 예산의 독립 운영을 핵심으로 하는 운영 규정을 제정, 기존의 산업기술정보 부문을 분리·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업기술정보센터는 부설 기관이라는 한계로 인해 설립 이전의 운영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정부나 기관의 운영책임자들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산업기술정보센터는 1989년 8월 전 직원의 서명을 받아 센터의 분리·독립 요구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범국가적인 기술정보 유통체계 강화를 위한 기술정보 전담기관의 설립 의지를 표출했다. 아울러 과거 KORSTIC이 1982년 정부출연 연구기관 통폐합을 거치며 국가 기술정보 전담기관에서 KIET 기술정보조사부로 축소된 사실을 근거로, 경제연구와 기술정보 유통이라는 이질적인 업무의 강제 통합에 따른 문제를 지적했다. 그리고 부설 산업기술정보센터를 이질적인 기관의 경제연구소에서 분리·독립시켜 기술정보 전담기관의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는 센터의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1990년 2월에 기관분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재산 및 인원 분리의 기본원칙에 따라 경제학 전공자는 KIET 소속으로, 이공계 전공자는 산업기술정보원(KINITI) 소속으로 분리하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조정했다. 그 결과 1990년 2월 20일 기준 산업연구원 측 인원과 예산은 216명(정원 235명)에 45억 3,600만 원으로, 산업기술정보센터는 170명(정원 188명)에 61억 1,100만 원으로 정했다. 또 해외 지원은 KIET, 국내 지원은 KINITI 소속으로 한다는 데 합의했으며, 재산 분리는 KINITI 설립 이후에 양 기관이 재산분리추진 실무위원회를 구성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이렇듯 기관을 분리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부설)산업기술정보센터를 독립법인으로 출범시키기 위한 법률 제정 작업도 추진되었다. 우리나라 산업의 국제 경쟁력 제고와 선진국의 기술보호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산업기술정보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얻으면서 1991년 1월 14일 「산업기술정보원법」이 법률 제4320호로 제정·공포되었다. 이에 따라 (부설)산업기술정보센터는 1990년 11월 이후 분리·독립을 위한 절차를 거쳐 이듬해인 1991년 1월 KINITI로 독립하게 되었다.
산업기술정보센터의
독립 촉구와 법률 제정

독립법인
산업기술정보원으로
새롭게 출발
산업기술연구원(KINITI)은 1991년 1월 21일 역사적인 개원식을 열었다. 1982년 정부에 의해 통폐합되어 산업연구원으로 출범했다가 (부설)산업기술정보센터를 거쳐 만 9년 만에 독립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한 것이다.
출범 당시 KINITI의 직원은 170명이었으며 조직은 정보조사 및 분석 부문에 과학기술 분야별로 4개의 실과 산업무역실을, 정보수집 및 처리 부문에는 정보자료실과 DB운영실, 전산실, 특허정보실을 각각 배치했다. 또 정보보급 및 홍보 부문에는 사업운영실과 홍보교육실을 두었으며, 부산 등지에 9개의 지역정보센터를 설치했다.
KINITI는 독립을 계기로 국내외 산업·무역·기술에 관한 정보를 수집·처리·보급하고 산업과 지역 간 원활한 정보교류를 촉진함으로써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아울러 1991년 1월부터 5개월여에 걸쳐 경영진단을 진행하고 이에 근거하여 그해 9월 ‘신속·정확·저렴한 정보유통체제 구축’을 기본방향으로 하는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KINITI의 중장기 발전은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정보의 수집·가공·유통기반 조성과 확충, 정보활동의 고도화와 국제정보교류 활성화 등 총 3단계로 추진되었다. 이를 통해 국가 산업기술정보 전담기관으로 자리매김한 KINITI는 1998년, 21세기 국가 지식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통합적인 기술정보 유통체제 확립, 선진 정보기관으로의 체제 혁신, 세계 일류 정보기관으로 도약 등을 단계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여 실천해나갔다.

한편, 1994년에는 가속화되는 국제화와 정보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개혁을 단행했다. 정보보급의 확대와 수익성 제고를 개혁의 큰 방향으로 삼아 민간기업 방식의 경쟁원리를 반영한 준사업부제를 도입하고 투입 및 산출의 생산성 향상에 주력했다. 또한 자율과 창의가 존중되는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고자 노력했으며, 고객 위주의 정보서비스 체제와 국제화에 부응하는 협력사업 체제를 각각 구축하고 업무 자동화를 통해 행정 능률을 극대화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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